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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5

한국어와 나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국어를 접한 것은 지금부터 20 여년 전이었다.
서울로의 출장이 잦았던 아버지에게 가끔 한국으로부터 걸려오는 전화.

잠깐만 기다리세요.

이런 말을 반복했다.

잠깐만?

얼마나 이상한 말인가
이것이 한국어에 대한 첫 기억이다.

그리고, 두번째 만남은 대학교 4학년 때의 겨울.
졸업을 수개월 앞두고, 마지막 수업 등록.
파스타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탈리아어를 선택하려고 결심...
그리나 전공 과목과 시간대가 겹치는 바람에 울며 겨자 먹기로 단념.
그 다음으로 골랐던 것은 김치와 불고기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한국어였다^^;

신바람이 나서 수업 첫날을 맞이하면...
반 친구는 나와 한 학생을 제외하고는 전원 한국인!
내가 대학교 시절을 보낸 미국, 필라델피아에는 코리안 타운도 있고,
재미 한국인이 많은 동네였다.
그래서, 캠퍼스 안에는 한국인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물론 그들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결코 한국어 실력이 뛰어났던 것은 아니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이 일상회화는 한국어로 구사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처음부터 뒤떨어진 (...그러나 같은 출발선에 서있지도 않았던) 나는,
한순간에 의욕이 사그라졌다.

한국어 따위 고르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이미 졸업이 임박했으므로 더이상 논문 투성이의 수업은 싫었다.
어떻게 해서든 레포트를 쓰지 않아도 되는 어학 수업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낙제는 하지 않고 끝났으나, 처음부터 할 마음이 없었던 내가 1 학기
동안 배운 한국어는...

대사관은 어디예요?

뿐이었다.
물론, 한글조차 읽을 수 없는 채로 끝났다.
이 때 나는, 앞으로의 내 인생에서 한국어와 관계되는 일은
일절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한국어가 발목을 잡아 졸업을 못하는 건 아닌지...진짜 걱정하고 있었지만,
그럭저럭 졸업증서는 무사히 받을 수 있었다.
이 영광스러운 무대에 일본에 계신 부모님을 초대할 작정이었다.
어머니는 일부러 이 졸업식을 위해서 여권을 만들고
미국에 오실 만반의 준비를 하셨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졸업식에 부모님을 부를 수 없는 사태가 별안간 발생했다.
결국, 부모님없이 나의 영광스러운 무대는 끝났다^^;

일본에 귀국한, 불효자식을 향해서...

아~ 엄마의 여권이 새하얗네.

등등 어머니가 말한다.
무책임한 자식은 이러한 부모에게서 태어난다^^;

이 압박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나는
어떻게 해서든 여권에 도장을 찍을 해외여행을 계획했다.
그래, 일본에서 가장 가까운 그 나라.
두번 다시 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그 나라.
한국이었다.

이유는...
가장 쌌다는 점.
그저 그것 뿐이었다.
한국 자체에 아무런 생각도 없이,
솔직히 일본에서 탈출만 가능하다면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 간 서울의 거리.
모든 것이 외국이었다.
분명히 공부했을 터인데, 읽을 수 없는 간판.
끝없이 넓은 도로.
활기에 찬 수많은 노점상.
그리고 무엇보다도...
충격적이었던 것은...

한국의 사람들이었다.
심하게 미국 물에 든 무미건조한 자신에게 있어서
터무니없이 정에 넘치는 한국인.
안녕하세요 한마디에, 지나칠 정도로 상냥한 미소를 던지는 한국인.

이 사람들의 미소가 나에게 한국어 공부를 진지하게 시작하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래, 3번째의 한국어와의 만남의 도래인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문화 센터의 한국어 클래스의 문을 두드렸다.
의욕은 넘치는데 어쩐 일인지 아직까지 한글을 읽을 수가 없다.

어째서 이 나라의 글자는 동그라미와 막대기의 조합인 걸까...
세종대왕은 도대체 어디에서 이런 것을 생각해낸 것일까?


그런 해답 없는 질문만이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갈 뿐 전혀 외울 수가 없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12 번의 수업도 모두 끝나 있었다.
3 개월이 지나도 한글이 머릿 속에 들어오지 않는 나란...
정말 구제불능이다.

그 때 떠오른 생각이...
뒤치진 나를 구해줄 수 있는 것은, 바로 가정교사!
한국인 유학생 선생님이 오셔서, 우리 집에서 개인 수업이 시작되었다.

1 대 1 이면 공부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하기 보다 지난 주에 배운 것을
완벽하게 암기하지 않으면 선생님을 뵐 면목이 없다.
그런 마음가짐만으로 나는 미친듯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일요일에는 점심 때까지 죽은 듯이 자는 내가, 어쩐 일인지 한글을 외우기
위해서 아침 8시에는 일어나서 책상 앞에 앉곤 한다.

습관이라는 것은 무섭다.
처음에는 힘들지언정, 한번 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보통이 되는 것이다.

그 후로는 어느덧 5 년.
지금은 그런 정열도 어디에 갔는지...
그런 상태이긴 하지만, 날이 갈수록 한국에 대한 마음은 강해지고 있다.
도대체 얼마나 실력이 늘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있어서는 축하할 만한 일이다.

4 번째의 한국어와의 만남은 이제 필요없다.
이 3 번째의 만남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このブログを始めて間もない頃書いた
「韓国語と私」というつぶやきを韓国語に訳してみた・・・。
自分で書いた文なのに、ムズカシイ・・・^^;
しかも日本語の原文が意味不明な箇所が多々ある・・・(笑)。

能力試験が終わって、まるでヤル気が起きないが・・・。
ああ・・・たまには書く練習もせねば・・・。
日に日に、韓国語が頭からするする抜け落ちていくのを、痛いほど実感。
5年かけて得た知識は、5ヶ月もすればすべてなくなるのでは・・・!?
怖すぎる・・・(なら、勉強すればいいだけなんだけ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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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4

韓国語と私

私が生まれてから最初に韓国語に触れたのは今から20年以上も前のことだった。
ソウルへの出張が多かった父は、たまにかかってくる韓国からの電話口・・・。

「잠깐만 기다리세요.(チャンカンマンキダリセヨ/少々お待ちください。)」

こんな言葉を繰り返す。

「ちゃんかんまん?」

・・・なんて不思議な言葉だろう・・・。
これが韓国語との初めての出会いだった。

そして、2度目の出会いは大学4年の冬。
卒業を数ヵ月後に控え、最後の授業登録。
パスタが好きという理由から、イタリア語を選択しようと決意・・・(笑)。
しかし、専攻科目と時間帯が重なってしまっていることから、泣く泣く断念。
次に選んだのは、キムチとプルコギも好きという理由で韓国語だった(笑)。

ルンルンの気持ちで授業初日を迎えると・・・。
クラスメートは何と私ともう一人を除いては全員韓国人!
私が大学時代を過ごしたアメリカ、フィラデルフィアにはKorean Townもあり、
在米韓国人が多い町だった。
そのため、キャンパス内には韓国人が溢れていた。

もちろん彼らはアメリカで生まれて育っているため
決して韓国語が上手なわけではなかった。
ただ、ほとんどの人が日常会話は韓国語でこなせる位のレベルにあった。
最初から出遅れた(・・・というか同じスタートにも立ってない)私は、
一気にテンションが下がった。

「韓国語なんて選ばなければ良かった。」

でも、もう卒業間近に控え、これ以上論文だらけのクラスは嫌だ。
何とかペーパーを書かずに済む語学のクラスを選ぶしかなかった。
結局、単位は落とさずに修了したものの、最初からやる気がなかった私は、
この1学期間で学んだ韓国語は・・・

「대사관은 어디예요?(テサガヌン オディエヨ/大使館はどこですか?」

のみ・・・(笑)。
もちろん、ハングルすら読めるようにもならずに終わった。
この時私は、今後の私の人生で韓国語と関わることは一切ないと確信した。

韓国語が足を引っ張り卒業できないのでは・・・と本気で心配をしていたが、
なんとか卒業証書は無事手に入れることができた(笑)。
この晴れ舞台(?)に日本から両親を招待するつもりでいた。
母はわざわざこの卒業式のためにパスポートを作り、渡米の準備万端。
・・・にも関わらず、卒業式に両親を呼べない事態が突如発生・・・(笑)。
結局、両親なしで私の晴れ舞台は終わった。

日本へ帰国した、親不孝な娘に向かって・・・。

「あ~、お母さんのパスポート真っ白だわ。」

などと母が言う・・・。
いい加減な子供は、こういう親から生まれる(笑)。

このプレッシャーから逃れるため、私はなんとかパスポートにスタンプが押せる
海外旅行を計画した。
そう・・・。日本から一番近いあの国。
二度と関わることがないと思っていたあの国。
韓国だった。

理由は・・・。
一番安かったということ。
ただそれだけだった。
韓国自体に何の思い入れもなく、
正直日本から脱出さえできればいいと思っていた(笑)。

初めて訪れるソウルの町。
何もかもが外国だった。
勉強したはずだけれど、読めない看板。
限りなく広い道路。
活気ある屋台の数々。
そして何よりも・・・。
衝撃的だったのは・・・。

韓国の人々だった。
ひどくアメリカかぶれなドライな自分にとって
とてつもなく情に溢れる韓国人。
「アンニョンハセヨ」の一言で、優しすぎる微笑を投げかけてくれる韓国人。

この人たちの笑顔が私に韓国語の勉強を真剣にさせようと奮い立たせた。
そう、3度目の韓国語との出会いの到来である。

旅行から戻るなり、カルチャーセンターの韓国語クラスの門を叩いた。
ヤル気だけはあるのに、なぜか未だにハングルが読めない。

「どうしてこの国の文字は丸と棒の組み合わせなのだろう・・・。」
「世宗大王は一体どっからこんなことを考え出したんだろう。」

そんな答えのないことばかりが頭をよぎり、まったく覚えられない。
気がついたら、全12回の授業も終了していた。
3ヶ月経ってもハングルが頭に入らない私って・・・。
本当に救いようがない・・・。

そこで思い立ったのが・・・。
落ちこぼれの私を救ってくれるのは、きっと家庭教師!(笑)
韓国人留学生の先生に来てもらい、我が家でプライベートレッスンが開始した。

1対1だと、勉強云々よりも、先週習ったことが覚え切れてないと先生に申し訳ない。
そんな気持ちだけで、私は狂ったように勉強しはじめた。
日曜日はお昼過ぎまで死んだように寝てる私が、なぜかハングルを覚えるために
朝8時には起きて机に向かったりする。

習慣というものは恐ろしい。
最初は大変でも、一度やりだしてしまうと、それが普通になってしまうのだ。

あれから早5年。
今となってはそんな情熱もどこへやら・・・。
そんな状態ではあるが、日に日に韓国への想いは強くなる。
一体どれほど上達したかは分からないが、少なくともハングルが普通に読めるように
なったことだけでも、私にとってはおめでたいことだ(笑)。

4度目の韓国語との出会いはもう要らない。
この3度目の出会いが、永遠に続きますように・・・。
プロフィール

まい

Author:まい

『まいと学ぼう韓国語』

韓国語学習歴
2003年4月韓国語学習をスタート。いつまで経っても読めないあの丸と棒の組み合わせに、悩まされる日々。

そんな苦悩からも早8年。日本で細々とこの言語と格闘中。

韓国語資格
2008年9月韓国語能力試験6級取得

2011年7月の教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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